이 글엔 사이버펑크 2077 본편과 팬텀 리버티 DLC의 결말에 대한 스포가 가득하니 읽을 때 주의를 바람.
팬텀 리버티가 출시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팬텀 리버티의 가치를 따져보자면, 먼저 CDPR이 2.0 업데이트를 추진하도록 원동력을 부여한 점이 있고, 그 다음으로 본편 결말에 새로운 이야기 가지를 달아주면서 전체적인 이야기와 주인공 V의 고민을 좀 더 풍부하게 해준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 후자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이버펑크 본편의 결말은 총 다섯 가지다.
- V가 아라사카를 다 때려 부수고 나이트 시티의 전설이 된 뒤, 본인의 생존을 위한 치료법을 찾아 호화 상업용 우주정거장인 크리스탈 팰리스에 잠입하는 또 하나의 계약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으로 게임 마무리
- V가 아라사카를 다 때려 부수고, 나이트 시티를 떠나 팬앰의 노마드 클랜과 함께 치료법을 알 수도 있는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게임 마무리
- V가 아라사카를 다 때려 부수고, 조니에게 몸을 넘기고 V는 알트 커닝햄을 따라 블랙월 너머로 간다(사실상 소멸). 조니가 V로부터 새로운 삶의 기회를 받아 나이트 시티를 떠나면서 게임 마무리
- V가 하나코와 거래하여 요리노부 세력 처리를 도와준 뒤 보답으로 아라사카의 치료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게임 마무리(라지만 사실상 아라사카로부터 팽 당하고 치료는 커녕 우주 실험실 쥐새끼가 되는 결말)
- V가 최종 미션을 앞두고 자살
연인과 얽히는 부분은 전부 제외하고 굵직한 부분만 보면 위와 같다. V에게는 사실상 모든 결말이 시궁창이나 다름 없는데, 잘 되어봐야 '살 수 있는 확률이 0은 아닌' 상황이고, 그 외에는 죽거나 죽음보다 더한 '사이버스페이스로 융합' 정도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본편 내내 살아남기 위해 정말 몸이 걸레짝이 되도록 구르는 것에 비해 결말이 좀 많이 시궁창이다. 물론 재키가 죽었을 때 같이 죽었어야만 하는 게 운명이긴 하지만, 겨우 살아남아서 다시 한 번 생존을 위해 피를 토하는 노력을 다하는데도 어떠한 확정적인 구원도 없다는 점이 굉장히 슬펐다.
게이머들의 그런 반응을 고려한 것인지 팬텀 리버티에는 조건부 구원 결말이 추가되었다. 팬텀 리버티의 결말은 총 다섯 가지다.
- V가 송소미 편을 들고, 추후 송소미에게 최종적으로 배신당함에도 불구하고 송소미의 구원을 위해 송소미를 달로 보내고, V 본인은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못한 채 본편 결말 중 하나를 택해야하는 상태로 DLC 마무리
- V가 송소미 편을 들고, 추후 송소미에게 최종적으로 배신당할 때 송소미를 배신하고 FIA에 넘긴다. V는 NUSA의 자산을 무사히 되찾아준 보상으로 렐릭과 조니를 완전히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지만, 그 결과 전투 사이버웨어를 전혀 설치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린다. 수술 후 기절해있던 사이에 리퍼닥 빅터를 제외한 모든 친분이 떨어져나가는 비참한 이야기 전개는 덤.
- V가 FIA 편을 들고, 최종적으로 송소미를 족쇄로부터 해방(죽여서)시켜서 FIA의 공분을 산다. (2)의 수술은 고사하고 오히려 비난만 잔뜩 들은 채 V 본인은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못한 채 본편 결말 중 하나를 택해야하는 상태로 DLC 마무리
- V가 FIA 편을 들고, 최종적으로 송소미를 FIA에 넘긴 뒤 (2)의 결말과 동일
- V가 대통령을 구하는 초기 몇 개의 임무만 수행한 뒤, 최종 구출 임무(DLC 메인 퀘스트)를 무시하고 본편 결말로 게임 마무리
인터넷에서 팬텀 리버티 소감을 보면, 배신을 당했을지언정 송소미를 위해 희생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 같은데, 이 빌드를 직접 시험해본 결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신자는 철저하게 응징하면 되는 것이다. DLC 엔딩 시퀀스인 뮤직 비디오를 보면, 영상 후반부에 V를 네 인물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각각 소미, 리드, 마이어스 대통령, 커트 핸슨으로 각자의 이익에 따라 V를 장기말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즉, 소미 역시 말투만 사근사근할 뿐 마이어스나 리드와 다르지 않다.
조건부 구원 결말이란 (2)나 (4)의 결말을 말한다. 본편 아라사카 엔딩과는 다르게 NUSA와 밀리테크는 제대로 치료를 해주긴 한다. 게임상에서는 치료의 결과가 굉장히 시궁창인 것처럼 묘사된다. 일단 길거리 양아치는 아침식사 안주로 죽여대던 몸에서 대응 하나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신세로 전락한다. 또한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명에서 볼 수 있듯, 사이버네틱 임플란트(사이버웨어)를 몸에 설치하지 못한다는 건, 정보기술펑크인 현실 사회에 대입해보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그리고 그것의 파생 기술 등을 아예 못 쓰는(혹은 아주 기초적인 기능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수준의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V도 굉장히 '다 끝났다' 식으로 반응한다.
여기서 본인은 궁금한 부분이 생겼다. 이 결말이 정말 게임 내에서 묘사한 것처럼 시궁창일까? 단지 수술 직후라 몸이 쇠약해진 상태인데다 감이 다 죽어버려서 잠시 비틀거린 게 아닐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이버웨어 0 빌드를 짜서 플레이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2) 결말을 따라갔는데, 왜냐하면 (4)로 갈 경우 맨 마지막에 지옥의 생존 공포 숨바꼭질 게임을 해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2)로 가야 알렉스가 살아남는다.)
사실 사이버웨어 아예 안 쓰는 빌드는 2.0 업데이트가 있기 전에는 엄청 큰 페널티가 발생하는 빌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2.0 전에는 캐릭터 방어력이 옷 아이템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전설(주황색)급 옷을 주워 입으면 아주 못해먹을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 업데이트와 함께 사이버웨어 부분이 완전히 바뀌었고, 방어의 대부분은 사이버웨어로부터 유래하는 등 사이버웨어가 엄청난 버프를 먹고 사이버웨어를 안 쓰면 (상대적으로)심각한 너프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허약한 빌드를 너프까지 먹을 상태로 해야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사이버웨어 수치를 0으로 고정한 채 게임을 진행하려면, 절대로 찍지 못하는 특전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빌드 선택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일단 넷러닝은 아예 못한다. 근접 공격도 마찬가지로 못한다. 방어력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맞으면서 회복한다는 개념이 불가능하다. 각 특성 탭에서 특전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특성을 20 찍으면서 특전을 두 갈래 이상 찍어야만 고난도에서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하기 때문에, '테크 능력'을 20 찍고 '반사 신경'이나 '냉정' 중에 하나를 골라서 20을 찍는 게 좋다. 본인은 '냉정'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초반에 양쪽을 다 찍먹하면서 진행했는데, 방어도 0 페널티가 상당히 뼈아파서 사방팔방에서 빠르게 둘러싸며 접근하는 적을 차단하기 위해선 단시간에 하나씩 딱딱 끊어내는 게 중요했다. '반사 신경'에 해당하는 무기로 딜 교환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체력/방어력이 낮아서 불가능했다. 따라서 웬만한 건 은신 저격으로 처리하고 전투 돌입 시 테크 샷건 사타라로 하나씩 끊어 먹으면서 요리조리 튀는 게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싸움 방식이었다. 따라서 샷건 딜량 상승을 위해 '신체'도 일정 수준 찍어줘야 한다. 만약에 '신체' 항목의 15레벨 특전인 '아드레날린 러시'가 사이버웨어 없이도 적용되는 기술이었다면 '신체' 20 빌드도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필요조건에 특정 사이버웨어가 있다. 또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투가 있으면 처음부터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하므로 문 따기와 카메라 끄기가 가능하도록 '지능'에도 특성 포인트를 꽤나 할애해야 한다. 사이버웨어가 없어 기동성이 굼벵이와 비슷하다보니, '반사 신경'도 가운뎃줄을 어느 정도 찍어야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대충 이런 모양새가 된다. 정리하면, 일반 퀘스트는 냉정 기반의 소음기 권총으로 암살 처리, 중/장거리 이상에서 발생하는 전투는 테크 스나이퍼 라이플로 처리, 보스전과 같이 한정된 영역에서 발생하는 전투는 테크 샷것, 테크 권총, 테크 프리시전 라이플로 대응 정도가 사이버웨어 안 쓰는 빌드의 핵심이다.
이하 빌드 성능 확인을 위한 주요 보스전 영상이다. 소음기 권총 암살은 오히려 다른 빌드를 쓸 때보다 쉬운 느낌도 가끔 받았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테크 스나이퍼 라이플 역시 한 방 딜이 강하고 V가 워낙 멀리 있다 보니 일방적인 두들겨패기가 가능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전과 몇몇 사이버 사이코 처리는 사이버웨어 없는 상태로 나는 안 맞고 너만 맞는 전투 구도를 만들어내는게 매우 까다로웠기에 굉장히 어려웠다. 테크 무기 풀충전으로 한 방 먹이고 졸라게 튀다가 또 한 방 먹이고 튀는 방식으로 싸워야만 했는데, '졸라게 튀는' 과정에서 살아남는 게 굉장히 어렵다.
팬텀 리버티 DLC를 시작하기 위한 최소 조건인 메인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처치해야 하는 애니멀 갱단 보스 : 사스콰치(마틸다 K. 로즈)
팬텀 리버티 DLC가 시작되는 조건은 부두 보이즈와의 거래를 끝내고 성당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사스콰치 처치는 필수조건인 셈이다. 사스콰치는 평소에 그리 위협적인 보스는 아니었다. 주먹은 맞으면서 버틸 수 있고 망치는 공격 후 딜레이가 굉장히 길어서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웨어가 없이 도전할 경우 사스콰치의 1페이즈를 돌파하기가 특히 어려운데, 1페이즈를 통과하려면 사스콰치를 농락하여 뒤로 돌아 등에 달려 있는 보호막 장치(?) 같은 걸 먼저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버웨어 0은 곧 기동력 0이라는 소리고 뒤로 돌아가기 굉장히 어렵다는 뜻이다. 한 15회 정도 도전했던 것 같다.
메인 퀘스트 도중 처치해야 하는 아라사카 닌자 : 오다 산다유
사실 오다는 굳이 처리하지 않아도 팬텀 리버티를 시작할 수 있는데, 아라사카 하나코와 거래하기 직전의 정말 궁지에 몰린 V를 연출하기 위해(?) 잡아보았다. 사이버웨어를 잔뜩 설치하는 보통의 게임에서는 오다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특히 2.0 이후 근접 주먹/둔기 빌드의 경우 탱킹능력이 상당하고 감전 주먹 차징 펀치가 사이버웨어에 특히나 강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10초컷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이버웨어가 아예 없으면 칼에 두 번 닿으면 죽고, 스마트 무기 총알도 한 탄창 다 맞으면 죽는다. 대략 20 회 정도 시도했던 것 같다.
DLC 팬텀 리버티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보스 : 키메라
처음 키메라를 접했을 때는 이게 깰 수 있는 보스가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빌드에 따라 상성이 크게 갈리는 것을 미처 모른 상태로 도전해서 그랬다. 키메라는 본편 다른 보스들과는 다르게 기믹을 정확히 지켜서 타격해야만 잡을 수 있다. 공격과 공격 사이의 타이밍에 약점만 집중적으로 노려야 딜이 박히고, 공격을 하는 도중에는 사이버웨어가 있든 없든 맞으면 3초컷이기 때문에 무조건 달리기로 도망다녀야한다. 약점을 노릴 때는 테크 무기가 가장 좋고 다음이 파워 무기 제일 안 좋은 게 스마트 무기인데, 스마트 무기는 딜이 굉장히 분산되기 때문에 키메라가 공격을 쉬는 그 짧은 순간에 약점을 하나도 제대로 못 부수는 경우도 생긴다. 근접 공격은 매우 비효율적인데, 근접 공격 닿는 위치에 약점이 잘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근접 시 키메라의 공격 패턴인 광범위 독가스 살포 때문에 기동력이 0이 되면서 금방 죽기 때문이다. 기믹도 알고 있고 무기도 상성 맞게 잘 골랐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잡았다.
DLC 팬텀 리버티 송버드 선택 시 발생하는 최종 싸움 : 대규모 NUSA 특공대
불가능. 해골 달린 무시무시한 애들이 한 트럭 나오는데, 무기도 좋고 투명 사이버웨어에 심지어 AI도 좋아서 V가 잠깐만 가만히 있으면 사방에서 둘러싸듯 압박해온다. 벽 뒤에 숨어서 테크 무기로 프리딜하는 상황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다보니 쉼 없이 뛰면서 기회를 봐야 하는데, 저격은 한 발, 샷건 역시 한 발, 기타 무기는 두 발이면 죽다보니 피하는 상황 자체가 안 만들어진다. 전투 발생 꼼수를 찾아서 이걸로 몸 비틀며 50회 정도 시도해봤는데 안 되길래 불가능으로 판정.
빌드 도전 총평
특정 상황에서는 여타 사이버웨어 빌드에 밀리지 않을 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사이버펑크 세계관 특징 상 예기치 못한 사고/상황/전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잦은데 이것들에는 대응이 아예 불가능하다. 따라서 팬텀 리버티 렐릭/조니 제거 결말은 부분적으로 시궁창이 맞다.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를 믿는 게이머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만 한 결말인데, V 정도의 실력과 후광이면 나이트 시티에서 한 구획의 픽서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진정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은 다 떨어져나갈지언정, 그동안 V가 임무를 처리하면서 쌓은 인맥으로 제 2의 인생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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