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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이용자들 필독! - 게임 이용권 관련

아주흔한김선생 2024. 10. 15. 20:52

얼마 전에 스팀이 구매 계약 내용을 변경하면서, 스팀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구입할 시 뜨는 문구 역시 그에 따라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 변경이 전세계적으로 꽤나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바로 스팀으로 구매한 게임의 소유권과 얽혀 있는 문제 때문이다.

스팀 구매 페이지에 뜨는 이용권 관련 문구 캡쳐
문구 : 디지털 제품을 구매하면 Steam에서 해당 제품에 대한 라이선스를 부여합니다.

 

문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최근 입법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기사) 요지는 '실제로 소비자가 어떤 재화의 소유권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경우, 재화의 판매자는 판매 시 이를 구매가 아닌 이용권/사용권 계약이라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쉽게 말해, 여태껏 스팀에서 '구입'한 게임은 게이머가 '소유'하는 것이 아닌 게임 자체는 스팀 라이브러리에 존재하면서 게이머는 단순히 이 라이브러리에 대한 '접근 권한'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 것 뿐이다.

 

사실 이 문제는 꽤 예전에 이미 한 번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바로 사망한 사람의 스팀 계정을 상속인이 상속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어떤 게이머의 질문과 이에 대한 스팀 측의 불가 답변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에 대한 기사) 온라인 게임 구매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논란이 발생해야 맞다고 보지만, 당시에는 이번과 비교해서 조금 흐지부지 지나간 감이 좀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스팀 측에서 (스스로의 의지해 의해서든, 캘리포니아 주 법안 도입에 따른 강제력에 의해서든) 구매창에 직접 명시를 했느냐 안 했느냐 정도일 것이다.

 

이번 논란이 발생하고 나서 딱히 스팀 측의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스팀의 게임 '구매' 시스템이 사실상 허상이었다는 것인데, 이러면 본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XBOX 게임패스 구독과 전혀 다른 것이 없다. 사소한 차이가 있다면 스팀은 게임 별로 돈을 지불하고 게임패스는 패스 자체에 돈을 지불한다는 점이지, 실질적으로 디지털 배급 업체(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ESD, 스팀, 마이크로소프트)나 게임 개발사 측에서 '게임 내릴게요'하면서 당장 내일 어떤 게임을 내려버리더라도 게이머 입장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고 구제책 없이 온전히 게임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고무적인 부분은 GOG의 대응이다. GOG가 무엇인지, 이게 왜 좋은 ESD이고 좋은 시스템인지는 엠파이어 어스 글에 대충 적어 놓았다. GOG 공식 트위터는 이번 논란에 대응에 구매 시 뜨는 문구를 캡쳐해 업로드했는데, 이게 스팀의 최근 공지를 제대로 저격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GOG 역시 게임 개발사에서 게임을 내려버리면 못 하는 것은 똑같지 않냐는 지적도 있었다. 일단 캘리포니아 주에서 법이 발효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CDPR 역시 이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 시 뜨는 결제창에 스팀과 동일한 문구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CDPR은 자체적으로 GOG를 통한 구매는 라이센스가 아닌 온전한 구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서 이를 위법으로 보고 고소를 할지 아니면 합법이라 보고 넘어갈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고, 최종적으로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판단이 나와야 CDPR의 주장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GOG 공식 트위터 오프라인 인스톨러 문구
GOG : 여기서 구매한 디지털 제품을 오프라인 환경에서 설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인스톨러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는 여러분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스팀에 타격이 갈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스팀은 ESD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며 딱히 방침을 재정립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이 생겨버렸다는 점에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중요한 지점으로 간주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볼 수 있다. 스팀, 즉 밸브라는 회사 자체가 게이브 뉴웰 개인 회사이고 지금까지는 그의 게이머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해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정책과 방법론이 있음에도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지만, 게이브도 나이가 많이 들었고 이 사람이 사망한 혹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밸브라는 회사를 차지하게 될 사람이 게이브와 동일한 방식을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극단적으로 보면, 취임하자마자 이윤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이용권 라이센스를 영구적인 소유권으로 바꿔준다면서 각 게임의 정가에 비례한 일정 비용을 지불하도록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미국 이용자들은 단체로 고소라도 해볼 수 있지만 한국 이용자들은 뭐 그냥 눈 뜨고 코 베이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GOG를 참 좋아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내 GOG 이용자가 많이 늘길 바란다. 스팀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GOG 시스템 역시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고, 단점이라 하면 스팀보다 약간 느린 다운로드 속도라든가 아니면 게임 리뷰 시스템의 가독성이 좀 부족하다든가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자는 조금 더 기다리면 될 일이고 후자는 스팀 켜서 리뷰 보고 끄면 될 일이다(본인은 GOG 구매 시 항상 그렇게 한다). 평소에 스팀에서 특정 할인을 진행하면 GOG 역시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할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가격 부분에서도 크게 문제가 없다. 다만 스팀은 원화거래가 되면서 환율이 실제 고시 환율과 살짝 다른데 반해, GOG는 달러로 결제가 되고 고시 환율을 적용받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최종 가격은 GOG가 조금 더 비싸긴 하다. 문제는 스팀이 GOG처럼 '완전 소유' ESD면 이게 비교 우위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면 GOG은 영구 소장, 스팀은 이용권이기 때문에 무조건 GOG가 유리한 셈이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패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스팀을 써 온 이유가 '소유'에 대한 안정감 때문이었는데, 이번 일로 사실상 그 안정감이 완전히 깨져버리면서 심리적 선호도가 GOG 쪽으로 기울 것 같다. 스팀에 이미 구입해놓은 게임 중 정말 맘에 드는 좋은 게임들은 GOG에서 안전하게 한 번 더 구매할 예정이다.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뒷통수 맞는 경험을 겪고 싶지 않다. 모쪼록 게이머에 유리하게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