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타필드 -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먹어 본 게임

아주흔한김선생 2024. 11. 19. 22:55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스타필드는 정말 처참하게 망해버린 게임이다. RPG 명가 베데스다에서 만든 게임 치고 GOTY 관련 제대로 된 수상 이력이 없다는 것만 봐도(물론 GOTY가 성공의 지표란 얘긴 아님) 망겜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망겜이어도 폴아웃 시리즈와 엘더스크롤 시리즈를 즐겨 했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온라인에서 타인이 이야기하는 '망겜이다'와 본인이 직접 체험해보는 '망겜이네'는 천지차이이므로 어떻게든 직접 해보고 싶긴 했다. 때마침 엔비디아 GeForce Experience 프로그램에서 엑스박스 게임패스 무료체험 안내가 왔길래, 내 돈 안 들이고 똥인지 된장인지 파악을 해보고자 스타필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확실히 직접 경험을 해보니, 분명히 망겜은 맞지만 특히 망겜이 되어버린 요소도 있는가 하면 딱히 망겜스러운 요소가 아님에도 적절한 왜곡을 통해 망겜 요소로 둔갑해버린 부분도 있었다. 첫 번째 DLC를 앞두고 있으며 딱히 대규모 구제책(?)이 발동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절대 정가로 구입할 가치는 없는 게임이며 심리적 상한선은 70% 할인,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즐기려면 80% 할인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이는 베데스다가 스타필드라는 게임과 그 프랜차이즈(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 또 그러한 의지 표명에 따라 얼마나 많은 금손 모드 장인들이 스타필드 판으로 돌아오느냐에 따라 추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엑박 게임패스 스타필드 도전과제 페이지
열심히(?) 찍먹했다는 증거

 

이하 스포일러 주의


 

 

공기와도 같은 비중의 메인 퀘스트

베데스다 게임을 한 20년치 쭉 둘러보면 전반적으로 엘더스크롤 쪽은 메인 퀘스트의 흡입력(혹은 driving force?)이 약한 편이고 폴아웃 쪽은 강한 편이다. 예를 들어, 스카이림에서는 알두인과의 조우 이후 '화이트런에 이 위기를 알려야 한다'를 쌩까고 바로 도둑 길드로 달려도 이야기 전개나 게임 속 분위기 상 어긋나는 점이 없다. 도바킨이 카짓이라면 오히려 그쪽이 더 어울리기도 하고. 애초에 '스카이림 국경을 넘다 잡혀온 죄수' 신분으로 시작하는 만큼 메인 퀘스트를 밟아나가야 할 흡입력이 떨어진다. 오블리비언도 비슷하다. 여기는 아예 감옥에 갇힌 죄수로 시작하는데, 다짜고짜 황제란 사람이 '너를 내 꿈에서 봤으니 너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해버리는 모양새라 정말 몰입한다면 '뭐래'하고 그냥 본인 갈 길 가도 게이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상할 게 없다. 반면 폴아웃 3은 볼트를 나가버린 아빠의 자취를 쫓는 여정이고, 뉴베가스는 내 머리에 총알 두 개 박아 넣은 10색히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 이야기이고, 폴아웃 4는 불과 몇 살 안 된 아들의 납치범(+ 배우자의 살해범)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메인 퀘스트를 완전히 무시해도 게임 진행에는 문제가 없지만, 메인 퀘스트를 진행해야만 더 자연스러운 전개가 되도록 주인공의 배경을 설정해 놓았다. 두 방식은 장단점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흡입력이 특히 약했던 스카이림 이후 흡입력이 특히 강했던 폴아웃 4가 출시되었기 때문에 쭉 베데스다의 게임을 해오던 게이머들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필드의 메인 퀘스트는 어떠한가? 출시 이후 전문가 리뷰 같은 걸 보면 메인 퀘스트가 영 별로라는 의견이 많아서 막연히 엘더스크롤스러운 메인 퀘스트 전개인데 좀 못 만들었나 싶었는데, 직접 해보니 스카이림보다도 메인 퀘스트의 흡입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메인 퀘스트를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는데, 후반부는 우주 곳곳에서 '유물'이라는 걸 찾는 게 끝이기 때문에 아예 비중을 논할 가치도 없다. 달리 말하면 메인 퀘스트의 후반부는 사실상 도전 과제에 '게임 클리어' 과제를 달성하는 용도 외에는 존재 가치가 아예 없다. 그나마 참작의 여지가 있는 건 전반부인데, 진행 순서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뭘 해보려고 했는지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형편 없어 베데스다의 기획력이 바닥을 드러냈나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메인 퀘스트 전반부에서는 먼저 주인공이 명망 높은 탐험가 단체에 가입하고, 현재 단체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대원들로부터 퀘스트를 받아, '출장' 나가 있는 대원들과 만나 '유물'이라는 것을 찾아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 단체 가입은 엘드스크롤 정도의 흡입력 정도로 설정되어 있어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 (그냥 쌩까고 자유 탐험 해도 된다는 얘기) 문제는 이후 전개이다. 그동안 평가가 좋았던 베데스다 게임들은 일단 메인 퀘스트를 밟아나가기 시작하면, 다양한 세력과 극적인 방법으로 조우하면서 해당 세계에 존재하는 갈등 구조라든가 게임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철학적인 요소라든가 하는 것을 하나 둘 파악하게 되고, 기승전결의 '전' 즈음에 다다르면 게이머의 취향에 따라 어느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엔딩까지 쭉 진행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스타필드는 이런 설계가 매우 조악하고 허접하다. 메인 퀘스트의 목적인 유물 찾기와 기존 다양한 세력의 갈등 구조 사이에 엮이는 부분이나 연결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세력과의 조우가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만 이루어져서 각 세력의 입장이나 철학에 충분히 젖어들 틈이 아예 없다. 다시 말해, 잘 만든 게임은 메인-세력-보조 퀘스트가 서로 유기적인 다층 구조로 연결되어 하나를 하다보니 다른 쪽도 건들게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는데, 스타필드는 메인 한 층 따로, 각 세력이 각각 층별로 따로, 보조 따로 노는 완전 따로국밥인 형태라, 메인 퀘스트에서 시키는 일도 재미가 없는 마당에 그 퀘스트들이 재밌는 갈등 구조와 엮이지도 않기 때문에 하는 내내 지루하기만 하다.

 

알맹이 없는 다회차 강제

사실 다회차 강제는 단점으로 치는 게 맞는지 의견이 꽤나 갈리는 부분이다. 어떤 게이머는 게임이라면 모름지기 한 번의 플레이로 모든 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게이머는 애초에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는 이상 굳이 한 번에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설계하지 않고 매 플레이마다 컨셉을 잡고 진정한 롤 플레잉이 가능하도록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인은 후자에 조금 더 동의하는 입장인데, 완전히 선형 진행 게임을 만들어서 세력이고 뭐고 상관 없이 일직선으로 쭉 달리기만 하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전자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선택지를 도입하거나 다양한 세력을 등장시키는 메인 퀘스트를 가진 게임이라면 '다회차 강제'까진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다회차로 유도하는 시스템(한 번 하고 끝내는 건 자유이지만, 여러 번 하면 더 재밌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필드에는 다회차 강제 시스템이 있다. 처음 보는 엔딩이 엔딩 크레딧이 뜸과 동시에 바로 뉴 게임 플러스로 이어진다. 보통의 뉴 게임 플러스와 같이 일단 메인 화면으로 나갔다가 [새로 시작→뉴 게임 플러스 선택→게임 시작]의 흐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 쭉 이어진다. 이 때 플레이어의 레벨과 찍은 스킬, 기슬 업그레이드 같이 '주인공'에 해당되는 내용은 유지되고, 아이템과 우주선, 행성 개척지 개발 등 주인공의 '소지품'에 관한 것은 전부 초기화된다. 주인공이 다른 차원(멀티버스)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살아간다는 게임의 결말과 비교적 잘 이어지는 설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스타필드의 세계는 두 번 씩이나 할 만큼 할 게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게임에서 할 만한 걸 전부 다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니까 발견할 수 있는 세력 퀘스트를 전부 끝내고, 보조 퀘스트도 웬만큼 다 해서 퀘스트 로그에 뜨는 내용이 한 페이지도 채 되지 않으며, 메인 퀘스트 도중 이 행성 저 행성 뺑뺑이 돌리는 (한계가 있는)반복 퀘스트도 전부 끝냈으며, 행성 개척지도 여러 군데 제대로 개발해서 개척지의 거대 기업가 수준의 경제력도 확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뉴 게임 플러스가 뜨는 순간 아마 첫 느낌은 '지친다' 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번 한다고 해서 게임 속 내용 중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메인 퀘스트를 완전히 스킵해버리고 '자유로운 우주 탐험'을 할 수 있긴 하지만, 똑같은 세력/보조 퀘스트, 똑같은 돈 벌기, 똑같은 우주선 제작 노가다, 똑같은 행성 개척지 개발 노가다 등 핵심적인 부분은 달라지는 게 아예 없다. 그나마 메인 퀘스트 분기 상 희생된 동료의 동료 퀘스트를 뉴 게임 플러스에서 한다는 아주 사소한 차이점이 있긴 한데, 애초에 동료가 각종 퀘스트와 긴밀하게 엮이거나 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처음 게임에서 저장-불러오기 후 다시 진행하는 게 아주아주아주 훨씬 스트레스가 덜하다.

본인은 뉴 게임 플러스를 한 번만 진행했는데, 두 번째 플레이에서 뭘 해봐야겠다 하는 결심이 서서 해봤다기 보다는, 첫 플레이 때 스타필드=똥겜 선입견 때문에 아주 빠르게 대충 훑고 끝내자는 자세로 웬만한 세력/보조 퀘스트를 전부 스킵하고 결말을 보기에 딱 필요한 부분 정도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상 두 번째 플레이에서 웬만한 걸 다 경험한 결과, 이 이상의 플레이는 무조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플레이를 대충 수박 겉핥기를 두 번째 플레이가 할 만한 게임은 좋은 다회차 게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펑크를 처음 해봤을 때 웬만한 건 다 씹뜯맛즐 했음에도 두 번째, 세 번째 플레이가 충분히 가능했는데, 빌드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완전히 다른 게임 경험을 즐길 수 있고 여러 군데에 산재된 다양한 선택지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행보 차이를 보며 롤 플레잉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예를 들면, 위쳐3에서는 최소한 자애로운 게롤트로 한 번, 잔학무도한 게롤트로 한 번 해볼 수 있는데, 둘의 게임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 빌드도 완전히 다르게 설계 가능하므로 사실 두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스타필드는 그냥 이런 요소가 아무 것도 없다.

 

베데스다 게임임을 감안해도 너무나 많고 복잡하고 새로운 단계가 열릴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무기와 우주복 등 아이템 시스템

중간 제목이 과도하게 긴 것 같은데, 실제 스타필드를 해볼 때 가장 처음 깊은 빡침을 느낀 부분이라 가감 없이 적었다. 폴아웃 4에 충분히 익숙한 본인도 이렇게 느꼈다. 베데스다식 설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는 아마 금방 나가 떨어질 것이다.

베데스다 제작 게임은 대부분 샌드박스 RPG이기 때문에 게임 속 세계를 얼마나 충실하게 묘사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일례로 베데스다는 (기사였는지 인터넷 커뮤니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공식적으로 로어 마스터(lore master)라는 직책이 있다는 것을 밝혔고, 이는 베데스다가 보유하고 있는 IP의 세계관을 얼마나 충실히 관리하고자 하는지 그 자세를 보여주는 점이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게 판단하였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 게임 속 아이템을 만들 때에도 뭐가 이리 많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아이템을 만들어온 회사가 베데스다였다. 그런데 가장 최근 게임인 폴아웃 4까지만 해도(76? 그게 무엇인지?) 이 복잡함의 수준이 그냥 적당히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스타필드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 수준으로 납득도 안 가능 방식의 복잡함을 자랑한다.

상세 비교를 위해 다음 페이지에 나와 있는 폴아웃 4 무기와 방어구/옷을 총 망라한 표를 보자. (Fallout 4 weapon, Fallout 4 armor and clothing) 무기의 경우 굉장히 단순하다. 총알 무기와 레이저 무기가 있으며, 플레이어 캐릭터의 레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마다 점점 비싸고 강하고 업그레이드에 자원이 많이 필요한 무기가 드랍되기/상점에서 팔리기 시작한다. 무기 개조까지 생각하면 좀 복잡해진다 싶긴 하지만, 개조의 설명을 읽어보면 각 부품마다 특징이 명확하고 해당 개조를 달 수 있는 레벨이나 필요 자원 등이 명확히 나타나있기 때문에 'RPG식 성장'을 아주 가시적으로 쉽게 즐길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등급'의 무기가 드랍되기 시작하면 애초에 기존 무기로는 적을 처리하는데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상승 압박도 존재한다. 방어구의 경우 종류가 조금 적어보이는 대신 등급이 존재한다. 사실 이 등급 접두어만 놓고 보면 스타필드랑 다를 거 하나 없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등급에 따른 외관 변화이고 이를 통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컴뱃 아머 헤비를 보면 그냥 장착만 해도 딱 '아 이게 최종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직관적인 외형이기 때문에, '헤비'뒤에 '슈퍼헤비'나 '울트라' 같은 등급이 없을 것이라고 게이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등급의 방어구가 등장할 때 제때 업그레이드를 해 주지 않으면 고난도에서는 캐릭터가 그냥 분쇄되어 게임 진행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에 여기에도 역시 적절한 상승 압박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인은 폴아웃 4(그리고 뉴베가스와 3 역시)를 하면서 한 번도 장비 사용에 관해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겪은 적이 없었다. 즉, 여러 면에서 lore-friendly 설계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스타필드의 아이템 시스템을 보자. (Starfield weapon, Starfield equipment) 한 눈에 봐도 뭐가 많다. 솔직히 무기의 경우는 폴아웃 4보다 탄약 종류가 많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임을 하면서 뭔가 계속 새로운 탄약이 나오고 새로운 무기가 드랍되는데, 정도가 너무 심하다보니 흔히 말하는 선택장애가 오게 된다. 게다가 어느 정도 강한 무기를 손에 넣고난 뒤, 이쯤이면 추가 드랍은 없겠다 싶어서 업그레이드에 손 좀 대다 보면 갑자기 이상한 접두사가 붙어 있지 저등급 무기와 완전 똑같이 생긴 무기가 드랍되기 시작하는데, 이 때가 제일 혼란스럽다. 이 등급은 무엇인지, 다음 등급 아이템을 맞추는 게 게임 진행에 반-필수인지, 등급은 몇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지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외형 변화가 폴아웃 4 방어구처럼 확확 눈에 띄지도 않고, 한참 유심히 보다가 '뭔가 조금 다른데' 싶은 느낌이 들어 자세히 뜯어보면 그제서야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 보이는 수준이다. 심지어 바룬 가문 무기는 '이제 진짜 끝이겠지'싶은 게임 최후반부 고레벨 즈음에 뜬금 없이 드랍되기 시작해서 이건 또 무슨 등급까지 접두사가 붙나 당황스럽다. 위에 언급한 페이지에 보면, 무기는 4단계까지 있는데, 본인은 4단계 아이템을 몇 얻은 상태에서도 '이제 진짜 끝인가? 진짜 풀 업글/개조해도 되나?'하는 고민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장비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5단계인데, 단계 접두사에 몇 단계인지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단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주 반-직관적인 설계라고 생각한다. (사실 5단계 시스템인 것도 이제서야 알았다. 인게임에서 특정 superior 우주복을 얻어보긴 했는데, 게임 삭제할 때가지 이게 최종 등급이 맞나 싶은 의심에 시달려야 했다.) 여기에 장비 자체 단계도 숨겨진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극초반 우주복 장비와 조금 성장한 레벨에 등장하는 우주복 장비가 있다. 둘 사이의 드랍 레벨 차이가 꽤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고레벨 장비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아 이제 업그레이드 해도 되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함정카드였고, 처음 보는 접두사가 붙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5단계가 아닌 10단계인 셈) RPG에 있어서 '종결템'이 너무 빨리 등장해도 레벨링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종결템'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애초에 '종결템'이 도달할 수 있는 부분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본인 캐릭터의 성장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을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곧 게임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세계관 내에서 본인 캐릭터의 성장을 느낄 수 없는 RPG는 이미 시작부터 망한 것이나 다름 없다.

 

(생각날 때마다 계속)